화통의 이야기

가은암 산성

단양의 화통 2009. 10. 12. 17:38

 

가은암 산성[可隱巖 山城]

 


    여람[與覽]에 기록되어 있는 가은암 산성[可隱巖 山城]은 성의 석축 둘레가 3,018척이고 성 안에는 우물이 3개가 있었다. 기록되던 당시에 이미 성은 퇴락[붕괴]하였다. 속속들이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우물이 3개나 있었다는 얘기는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이런 바위산 꼭대기 어디에서 우물이 솟는다는 말인가!

 

   또 실지[實地]에는 가은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놓았다.

 

   이른바 가은암산이 있어 가은성이라 하는 이곳은 남한강 물의 아래쪽[하류]이자 장회탄 서쪽인 구담과 접하는 곳에 있다.

 

   모여서 구담의 머리가 되고 또 북으로 구르고 서쪽으로 꺾여서 구담의 허리가 되며 구담의 허리가 되며 구담의 꼬리가 다하는 곳에 채운봉이 자리한다.

 

   가은봉은 북쪽으로 구르고 서쪽으로 꺾여서 구부러지는 곳에 서쪽 오로봉과 상대하고 서쪽 봉우리 사이에는 마을[성곡]이 있다.

   이 가은암성은 하연[呀然]하게 남쪽으로 향했으며 그윽하고 깊숙하여 인적이 없었다.

 

   마을 밖에는 바위가 물에 접해 있어 집 뜰과 같이 임하여 낚시를 할 만하며, 한 굽이가 다하면 절경을 이루니 고인들이 이름하여 가은[可隱]이라 했다.

 

  내가 그래서 짚신 신고 죽장을 짚고 고적을 방문하여 생각으로만 즐기던 땅을 찾고자 선인과 약속을 했더니 병으로 인해 세 차례나 기회를 얻지를 얻지 못했다.

 

  두자미[杜子美]의 “하시일모실송로백운변지구[何時一茅실送老白雲邊之句]“의 맛을 보려 했더니 세 차례나 그 맛을 보지 못함이 참으로 슬프구나.

 

    즉 가은 암성은 장회 마을이 건너다보이는 남한강 이북의 강변에 직면해 있으며, 정면에서 보기에 오른쪽으로 노들평[줄기는 가파른 절벽이나 꼭대기에는 5천 평 가량의 너른 평지가 펼쳐져 있음], 왼쪽으로 오로봉. 현학봉. 채운봉이 연이어 있다. 북으로는 금수산[백암산→적성산→금수산]의 기운이 울울창창하게 막아섰다. 가은암산성에서 적성면 소재지까지는 산길로 6Km가 넘는다고 하니, 이곳이 단양의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쉽게 사람들의 입속에 구전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사람의 근접을 막는 지형 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름도 可隱[가은]이 아니던가.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오명 스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천진사 왼쪽에 오로봉 넘어 현학봉에도 성터가 있어 기와조각과 돌무더기들이 널려 있다고 한다. 오명스님은 그것도 가은암산성이라고 일컬었다.

 

   산성의 형태라야 겨우 무너진 돌들의 잔해로서 추측될 뿐이다. 하긴 신라 진흥왕의 군대가 단양 땅을 밀고 올라간 지도 벌써 1,500여년이 지났으니 비바람의 세월 속에 무엇인들 남아 있겠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근방을 한참 더 둘러 보았더니 그제서야 성의 흔적들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내에는 기와 조각과 석전용으로 사용했다는 둥근 강돌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모두가 발아래 굽이치는 구담의 물가에서 지어 올린 것이리라.

 

   내가 신라군이라면 천연 요새인 고구려군의 가은암산성에는 손을 대지 않았겠다. 이런 은밀한 곳은 청 태종이 백마산성의 임경업 장군을 우회하여 한양으로 짓쳐 들어갔던 것처럼 그냥 우회하여 지나가 버릴 터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전쟁 관념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적을 정면에 두고 지나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앞에는 절벽이요. 절벽 밑은 강이요. 강 건너는 또 절벽과 같은 산이다. 길이 없고 궁벽한 산중인데, 이리로 넘어와야 했던 신라군이나 여길 지켜야 했던 고구려 군이나 도대체 상식이 있었던 것일까? 이 가은암산성의 싸움은 한민족 5,000년 역사 중에서 최고의 경계와 풍류를 자랑하는 싸움터였으리라.

 

 

2009년 10월 11일

 

단양군에서 2001년3월1일 재판 1쇄 펴낸

“단양의 향기 찾아“의


Page152~155에서 발췌하여 옮겨 적은 글임을 밝혀둡니다.

 

혹 오류 발견시에 신 영섭에게 연락 주시면 즉시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의정부 집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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