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의 이야기

장례 문화[수의]

단양의 화통 2018. 4. 24. 14:32


우리가 몰랐던, 일상속 숨어있는

대표적인 일제잔재문화! - 1탄





한국문화개발진흥㈜
대표전화 : 02-313-4114




2018년 04월 24일


충북 단양의 투구봉 주유소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영섭 올림.




우리 전통 장례의식에서 수의는

가장 귀한 옷이었읍니다.




1474[조선 성종]완성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1934년 조선총독부 발표 『의례준칙(儀禮準則)』


    전통 장례의식에서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 다시 말해 관리는 관복을, 선비는 유학자들이 입던 하얀 심의를, 여성은 혼례복 등으로 입던 원삼을 사용했읍니다.


    소재는 모두 누에 고치의 실로 만든 비단이나 명주 또는 목화로 만든 무명이었읍니다.

1474년 조선 성종 때 완성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염습 절차는 습[襲·수의를 팔다리에 끼워 입힘]을 한 뒤 옷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서 끈으로 묶는 소렴[小斂]과 대렴[大斂]의 순서로 하도록 되어 있읍니다.


    이 때 수의[비단·명주 등의 견직물]을 쓰고 소렴과 대렴을 할 때에도 군주가 경사스런 의식에 착용했던 붉은 강사포나 제례를 지내며 입던 면복최고 등급의 견직물을 사용하도록 했읍니다.


     조선시대 분묘를 이장(移葬)하거나 개발 등으로 발굴하는 과정에서 비단, 무명, 모시로 된 수의를 다수 발견할 수 있읍니다. 이렇게 발굴되는 분묘는 대개 회삼물로 회격[灰隔]처리를 잘 한 경우이고, 두꺼운 회격처리는 경제력이 있는 양반 가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읍니다.


    가난한 백성들은 회격묘를 쓸 수 없었고 관 안에 비단 수의를 넣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마로 만든 삼베 수의는 매우 가난한 백성 일부나 사용했을 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때문에 삼베로 수의를 하면 “오죽하면 삼베수의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읍니다.




     삼베 옷은 고인의 유가족들이 입는 상복의 소재로 제시되어 있읍니다. 고인과 혈연적으로 가까울수록 거친 삼베 상복을 입어서 슬픔이 크다는 것을 형상화했읍니다. 

    이렇듯 고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비단옷을 입혀드리고 유족들이 거친 삼베옷을 입던 우리의 문화는 조선의 전례서인 [국조오례의]에 명문화된 이래 면면히 이어져 왔고, 가족과 친지와 이웃 사촌이 모두 모여 슬픔을 함께 하던 전통은 긴긴 세월 이어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장례 전통이었읍니다.


     단국상의원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발굴된 수 천점의 출토복식[出土服飾]의 전문가 고증과 더불어 전통 상조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전통의상 전문가들과 서예가, 동·서양화가, 조각가 등이 힘을 모아서 품위있고 세련된 전통 예복[수의]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읍니다.




     ‘단국상의원’은 단국대학교의 전통 복식문화 복원 및 계승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성을 더하여 만든 명품 수의로 대한민국 전통 수의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장례 복식문화를 열어가고 있읍니다.




삼베수의는 1934년 조선총독부

의례지침에 따른 일제 잔재


삼베옷은 본래 조선의 죄수나 노비가 입던옷



[1934년 조선총독부 발표 『의례준칙(儀禮準則)』]



[상복]



     삼베옷은 본래 조선의 죄수나 노비들이 입던 옷으로서 살아 생전 이 옷을 입는 것은 가장 천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일제가 이를 수의로 입도록 강제한 것은 우리 전통문화를 격하시키기 위한 의도였읍니다.


     삼베수의, 완장, 리본 등을 규정한 1934년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삼베수의가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잘못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가 『의례준칙(儀禮準則)』을 발표하여 비단과 명주 사용을 금지해 버리고 삼베수의를 입도록 규정하였읍니다. 이는 우리의 장례 문화를 격하시키기 위한 것으로 오늘날 상주 등 유족이 팔에 차는 완장과 왼쪽 가슴에 다는 리본 또한 이 의례준칙에 따라 조선 총독부가 강제로 시행한 것입니다.


    고인이 입관한 뒤 묘소까지 누워 이동하는 상여[喪輿]에 장식하는 화려한 종이꽃 외에는 상가에서 생화를 사용하지 않는 게 우리 전통이었읍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부터는 근조화환[謹弔花環]을 상가에 세워놓는 풍습도 생겨나기 시작했읍니다. 실제 1926년 순종황제의 국장 장례식 사진첩에서 영좌 주변에 나무로 된 화환이 놓인 것을 볼 수 있읍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영좌를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菊花]로 장식하는 일본 문화마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좌 뒤에 병풍[屛風]을 세우는 게 전통이었으나 병풍 대신 일본식 국화꽃을 장식하는 풍토로 변질된 것입니다. 물론 헌화나 화환 문화가 당초 서양에서 출발한 기독교 문화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장례 식장에서 꽃장식 조차 완전히 일본 황실 상징 꽃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읍니다.


     고인에게 삼베 수의를 입히는 것은 전통 상례문화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국적없는 문화인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베 수의가 일제 잔재 인줄 모르고 전통으로 착각해 삼베 수의를 준비하거나 상조 업체 및 장례 식장에서 권하는 삼베수의를 쓰고 있는데 이는 부모형제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전통복식 전문가인 최연우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교수“삼베수의[壽衣], 영정사진, 유족 완장과 리본을 비롯해 영좌[靈座: 영위(靈位)를 모셔 놓은 자리]꽃장식까지 광복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일제 잔재가 장례문화에 남아있다”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일제가 시행한 삼베 수의가 우리 전통인 비단[緋緞]수의를 밀어냈다며 안타까워했읍니다.


   수의 재료, 완장, 리본 등을 규정한 1934년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儀禮準則)] 이후 삼베 수의가 확산 돼 오늘날에는 “삼베 수의가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잘못 인식하게 됐읍니다.


     민족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제가 강제한 치욕스런 문화를 오히려 전통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윤달에 수의 지어서 소중한 분께

드리는 전통을 알고 계시는 지요?







     윤달에 맞추어 부모님의 수의[壽衣]를 미리 마련해놓는 풍속으로 윤달은 음력 일 년 열두 달 이외에 한 달이 더 불어난 어느 달을 말합니다. 윤달이 들어 있는 해를 윤년(閏年)이라고 하며, 보통 3년만에 한 해씩 윤달을 둡니다.


     윤달은 정상적인 달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흔히 ‘공달·덤달·여벌달’이라고도 합니다. 이 때를 이용하여 유다른 일들을 치릅니다.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털이 안 난다”는 속담처럼 신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꺼려하던 일들을 처리합니다. 예컨대 집 수리, 이사, 선묘 단장, 수의 만들기 등 평상시 금했던 일들을 적극 처리하게 됩니다.



 





 



     수의[壽衣]를 마련할 때에는, 그 과정에서 박음질을 금할뿐더러 실의 매듭도 짓지 않는다. 박음질을 하게 되면 자손이 번성은 커녕 줄어들게 됨을 면치 못하며, 실을 매듭지으면 자손이 끊어지게 된다는 속신이 작용하고 있읍니다.


     윤달의 풍속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확인할 수 있다. “俗宜嫁娶又宜裁壽衣 百事不忌[결혼하기에 좋고 수의 만드는 데 좋다.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며 기록하고 있읍니다.

    예로부터 윤달은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이라고 여겨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수 있다고 생각했고,부정을 타지 않는 달로 인식되었읍니다. 따라서 윤달에는 수의를 마련하거나 조상들의 묘를 이장하려는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


     덤으로 생기는 달이므로 그 달에는 무슨 일을 해도 사방에 액이 없으므로 괜찮다고 믿어서 죽음을 떠올리는 수의를 마련해도 아무런 부정이나 탈이 없고, 도리어 부모님 무병 장수한다는 믿음으로 살아 생전에 미리 수의를 장만해 주는 것이 큰 선물로 기쁘게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윤달을 도깨비나 귀신들도 모르는 달 이라 윤달에 수의를 미리 사놓으면 수명을 도깨비나 귀신들도 모르게 할 수 있다고 해서 무병 장수에 대한 믿음인 동시에 생로병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의 순리를 깨우치게끔 하였다고 합니다.


2018년 05월 07일


왕가의 옷을 짓던 상의원의 마음으로
단국대학교의 명성과 우리전통의 아름다움을 이어갑니다.
전통과 美의 가치로 지은 전통수의,
‘단국상의원’의 장인들이 새롭게 만들어갑니다........를 복사하여


충북 단양의 투구봉 주유소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