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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검산의 풍수[뜽골]

단양의 화통 2013. 5. 18. 15:47

 

 

숙검산의 풍수[뜽골 ; 두음리]

 

 

     충북 단양의 5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다가 충주 나가는 북하리 3거리를 지나 운계천을 우측으로 건너다 보며 아름드리 노거수 느티나무 군락 숲길을 지나친다.

 

     북하리를 지나면 북상리가 되며 느티나무 숲길이 끝나게 되며 5번 도로 좌측으로  장림리가 시작된다.

 

    대강면 사무소를 지나며 4거리 신호등에서 직진[죽령방면]하지말고 우회전하여 죽령천을 건너면 바로 두음리[뜽골]에 당도하게 된다.

     두음리에서 소뜰교를 건너면 바로 숙검산이 시작된다.
     숙검산은 옛 문헌에 나오는 이름이고 현재의 이름은 덕절산 북쪽 봉우리라고  불러야  옳겠다.

 

      이 산 중턱에 단양 장씨들의 시조묘와 함께 고려말 공신인 장하[張夏]어른의 산소가 남아 있다.

 

     장씨 문중 묘에 이르는 이 길은 원래 산길의 소로로 도보로 오가야 했으나 장씨 문중의 자금 지원으로 1997년 여름에 임산로가 공식으로 개척되면서 차량 운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임산로를 따라 1㎞ 가량을 올라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두음리[뜽골] 문화마을  주민들의 아침 운동을 돕고 있는 체육시설이 있다.

 

    그 바로 옆으로 단양 장씨 문중묘들이 일렬종대로 줄지어 있다.

    이곳은 단양에서도 손에 꼽는 명당이다. 산자락 하나에 좌청룡 우백호가 다 들어가 있고 또 산의 흐름이 물처럼 부드러우며 전면에 보이는 소백의 영봉들이 완만하고 편안하게 눈에 들어온다.

 

장하[張夏]어른은 고려말 문신이다.

 

     공민왕 10년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개경을 수복한 공로로 전의주부로 2등 공신에 오른다. 우왕 4년에 밀직부사, 밀직제학, 한양부윤을 지냈고 한양부윤 시절에 의성에 쳐 들어온 왜구를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다. 창왕 1년에 문화평리가 되었으나 이 성계 일파를 모함한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된다. 그러나 곧 풀려나고 조선 개국 후에는 단산백에 봉해진다.

 

     이 장하[張夏]어른의 비석은 묻혀서 찾을 길이 없어서 후대에 다시 세웠는데 ‘옥산후인 부통령 장면’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장면이 부통령을 지내던 1956~1960년 사이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면은 내각책임제인 제2공화국 시절에 국무총리를 지냈으니 사실상 대통령과 맞먹는 권좌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丹陽 張氏의 벼슬로는 이것이 최고가 아니가 싶다.

 

 

2013년 05월 18일


단양의 향기 찾아 69~70 page[2Sheets ; 2000년 02월 05일 제 1판 1쇄]를 인용함.


대한민국의 Yacht항인 경기 화성의 전곡항!..........

그 전곡항 앞에 M-Boat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