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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방어 최전선 연변 봉수

단양의 화통 2012. 4. 14. 16:53

해안 방어 최전선 연변 봉수

 

                                                                                                        신문에 게시된 화성시 연변 봉수대 위치도와 염불산 봉수대 터

 

         봉수는 연기와 불빛으로 신호를 만들어 변방의 상황을 신속히 중앙으로 전달하는 군사용 신호 체계이다.  그래서 한자로 烽[봉;  봉화 봉, 횃불 봉]과 燧[수; 부싯돌 수, 연기 수]라 쓴다.   화  '최종병기 활' 에서 우리의 변방을 침입하는 청나라 군사가 제일먼저 습격하는 것이 봉화대로 나온다.   봉화가 끊겨 적정이 알려지지 않은 국경 마을은  힘없이 전란에 휘말려 많은 피해를 입게됐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봉수는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구한말 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시대에만 남아 있다.    특히 세종 때에는 봉화를 5개로 만들어 올리는 신호체계를 확립하고 전국의 봉수체계를 여러차례 정비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봉수에 대한 기록을 '조선왕조실록' 과 '경국대전'을 통해 살펴보면 봉수군은 매일 거화해 신호를 보내도록 돼있다.   기본적으로 앞 봉수의 신호를 뒷 봉수에 그대로 전하게 되는데 만약 앞 봉수에서 신호가 없으면 달려가서 앞 봉수의  정황을 살피고 변고를 파악하게 돼 있다.   아무 일이없는 평시에는 매일 아침 목멱산[지금의 서울 남산]에 1개의 봉화[연화]가 오른  것이 도달해 병조에 변방의 무사함을 알리게 된다.   또 봉수군에게는 봉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둔전과 보조 봉군들을 배치했고 맹수와 외적의 침입에 방비한 방호벽과 방어시설, 무기 등이 비치돼 있었다.    지금도 남해안 봉수터 주변에서는 주먹만한 자갈 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돌들은  수마석이라고 하는데 투석에 사용되는 무기이다.

 

 

      이곳 화성시에는 3개의 연변 봉수가 있다.  우정면 화산리의 봉화산 정상에 흥천산 봉수 당성 남쪽 봉우리에 있는 염불산 봉수,  그리고 송산면 독지리의 해운산 봉수가 그것이다.

 

      흥천산  봉수는 남쪽의 평택 괴태길 곶 봉수의 신호를 받아 다시 염불산 봉수로 전한다.   염불산 봉수는 다시 그 신호를 북쪽의 해운산 봉수에 전한다.   해운산 봉수는 다시 그 신호를 시흥 오질이 봉수로 전한다.    지금껏 화성에 남아 있는 봉수대들은 서로 8~9Km거리를 두고 있으며 경기만 연안을 감제하면서 남쪽 연변 봉수의 신호를 중앙에 전달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화랑진 일대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좌도 수군 첨 절제사영이 항시 주둔하고 있어 인근 염불산 봉수와 유기적으로 연계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화성의 봉수터들은 대부분 황폐화 돼 그 원형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리한 복원을 하려 하기보다 그대로 두었던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것 같다.

남해안의 여러 봉수터들과 심지어 남산의 목멱산 봉수는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별다른 고증이나 조사없이 막연하게 봉화통 하나만 달랑 복원하거나 형체가 잘 남아있는 수원의 화성 봉수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 놓아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은  문화재 복원을 시행하기 전에 철저한 발굴 조사를 통해 구조와 형태를 명확히 파악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필자가 발굴 조사에 참여한 성남의 천림산 봉수의 경우 내지 봉수로 서울 목멱산에 도달하는 마지막 봉수였는데 조사 전에는 나지막한 둔덕 형태로만 남아 있었으나 실제 발굴 조사를 해보니 연대와 봉돈 5개등이 나란히 잘 남아 있었고, 또 방호벽도 정연하게 잘 남아있었다.   이처럼 화성의 봉수들도 조사를 해보면 생각보다 원형을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흥천산 봉수와 해운산 봉수는 고려시대부터의 봉수로서 활용된 것이기 때문에 자료가 빈약한 고려시대 봉수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밤에는 불 빛으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는 봉수는 지금의 디지털 기계들이 갖추지 않은 많은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향수이며 수 많은 스토리들이다.     당성과 연계한 해안의 문화 유산들을 자원화하는 전략에서 보자면 봉수는 아주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김 충배 위원께서 기고한

화성의 문화유산 산책[6] 글을

화성신문 제 274호[2012년 04월 02일~04월08일 까지]

8면의 우측 상,중부내역을

 

2012년 04월 14일 토요일

대한민국의 Yacht항인 경기 화성의 전곡항!.........

그 전곡항 앞에 M-Boat에서 신영섭 옮겨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