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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

단양의 화통 2009. 10. 20. 11:37

사 릉[思 陵]

南楊州市 眞乾面 思陵里 所在[史蹟 第209號]

 

思陵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밀려나 비명에 운명하신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陵이다.

왕후는 단종 2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후 단종이 상왕[上王]이 되면서 의덕대비[懿德大妃]가 되었고 세조 3년에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奉]되면서 역시 부인으로 강봉[降奉]되었다.

 

그 후 정순왕후[定順王后]는 성 밖을 벗어나 서울 동쪽 교외에 살면서 영월의 단종 릉[莊陵]을 바라보기가 소원이어서, 작은 초가를 짓고 흰 옷과 소찬으로 평생을 보냈다.

 

중종 16년 왕후가 82세를 일기로 승하하시자 중종은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 지내게 했고 숙종24년 단종이 복위됨과 함께 정순왕후[定順王后]로 추상되어 종묘에 모셔졌으며, 묘를 높여 사릉[思 陵]이라 불렀다

 

사적 제209호인 이 능의 특징은 왕후가 생전에 단종을 흠모했던 정이 절실해서 사후에도 능 주변의 나무가 영월을 향하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는데 지금도 소나무 가지가 동쪽을 향하고 있답니다.

 

[1] 비운의 일생

 

정순왕후는 단종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행할 때부터 그 길이 순탄치 못했다.

가례를 맺는 그 해에 선왕인 문종이 승하하시고 단종이 즉위하여 채 3년도 못되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여 단종을 영월로 추방하고 또 정순왕후 친부인 송현수를 사육신과 함께 상왕복위를 모의하였다는 죄명으로 부인 민씨와 함께 처형되고 곧 단종마저 죽임을 당하게 되니 정순왕후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악몽의 내전에서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동교에서 노릉[魯陵; 단종의 능]바라보기를 원하였기에 조가로부터 동문 밖에 집을 짓고 영빈정동[英嬪貞洞]이라 이름 하였는데, 부인은 따로 초가를 두어 칸 지어서 거처하고 흰 옷과 소찬으로 평생을 보냈다.

 

정순왕후가 출가할 때 시녀 세 사람이 동시에 머리를 깍았는데, 그들의 승명은 희안[希安],지심[智心], 계지[戒智] 이었다.

한 사람은 항상 정순왕후를 곁에서 모시고 두 사람은 동냥을 하여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 하는데, 후에 부인이 정미수[경혜공주의 아들]를 시 양자로 삼아 미수의 집에 옮겨 거처하니 두 여승이 따라 갔고, 이들 여승이 죽자 사릉 가까운 곳에 묻었다 한다.

 

[2] 사릉의 일화와 전설

 

중종 16년 6월4일에 영빈[英嬪] 송씨가 승하하자 중종은 “노산부인 송씨 상사[喪事]는 의거할 만한 전례가 없으니 마땅히 왕자군 부인 초상례교[初喪禮敎]에 의하여 예관으로 하여금 시행토록 하라” 하였다.

그리고 전의는 완산군 부인의 예와 같이 하라 하고 단 역청칠을 한 곽관을 각 일부씩 더 제급하고 3년 내의 제수[祭需]는 소찬으로 공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숙종에 이르러 노산대군의 시호를 단종으로, 부인 송씨의 시호를 정순왕후로 추상하고 새 신주를 숙종이 친히 써서 이를 영령전[永寧殿]서쪽 제삼실에 올려서 부묘하고 친히 제사를 지냈다.

 

부묘한 후에 숙종은 시와 서[序]를 지었는데 “우리 단종대왕과 정순왕후의 복위 부묘하는 예는 실로 국가의 막대한 경사로다. 슬프다........ 내가 추복[追復]할 뜻이 있고도 성취하지 못한지가 여러 해 되었더니 육신의 관작을 회복하고 영월에 관헌을 보내어 제사를 베풀던 날을 당하여 지나간 일을 추억하니 슬픈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다. 이제 나의 뜻이 이루어 졌으니 아무 여한도 없다. 이것이 어찌 하늘과 조종이 가만히 도와준 것이 아니랴......”하였으니 애절한 단종과 정순왕후의 넋을 위로한 것이다.

 

홀로 임을 그리다가 여생을 마친 왕비의 심회를 알아줌인지 사릉에 심은 나무들은 전부 영월 쪽으로 머리를 숙인다고 전해진다.

 

정순왕후는 후사를 정미수에게 맡겼으므로 정씨 자손이 해마다 제사를 지내 왔다 한다.

 

 

 

혹 기술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경기북부 상공회의소에서

1989년 11월 11일 펴낸

 

경기 북부 명승고적, 관광 책자를 참조하고,

1981년 2월25일

초판 발행한 한국의 여로 ⑤ 서울근교 책자를 인용함.

 

 

충북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