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順公主[의순공주]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인조에 뒤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1년[1,650년] 청나라의 섭정 왕인 ‘도라곤’ 이 조선에서 왕비를 구한다며 “왕의 친누이나 딸, 왕의 친족이나 대신의 딸 중에서 정숙한 여성을 선발해 보내라” 고 요구한다.
이에 지금의 의정부시 금오동에 살고 있던 錦林君[금림군]이 개윤이 열여섯 살짜리 딸을 보내겠다고 나서고, 임금 효종은 고마움에 그 딸에게 ‘의[義]에 따른다‘ 는 의미의 義順公主[의순공주]호칭을 봉작한다. 청으로 간 義順公主[의순공주]는 그 후 도라곤의 急逝[급서]로 다시 도라곤의 부하장수 博洛[박락]의 첩실이 되지만 그 마저 1년 뒤 세상을 떠난다. 義順公主[의순공주]는 그렇게 청에서 기구한 삶을 살다가 7년 만에 조선에 돌아왔으나 오랑캐에게 몸과 마음이 더럽혀진 여인으로 몰려 슬픔 속에 스믈 여덟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납니다.
義順公主[의순공주]는, 말하자면 還鄕女[환향녀 ; 화냥년]의 전형이다. 還鄕女[환향녀 ; 화냥년]는 단순히 읽으면 고향에 돌아온 여인이라는 의미일 뿐이지만 호칭에 내포된 민중의 비극임이 극명하게 들어난다. 그럼에도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은 당대부터 모두 ‘還鄕女[환향녀 ; 화냥년]’ 이라는 모멸적인 호칭으로 불리었고 그것은 오늘까지도 不貞[부정]한 여인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義順公主[의순공주]와 그녀의 부친 錦林君[금림군]의 묘소가 지금도 의정부시의 금오동의 꽃동네에 거소합니다.
봉작칭호가 전해지고 그 유택이 남아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의순공주는 단순한 설화가 아니고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의정부 행복소식 11월호
제2010-9호 2010년 10월 25일 발행
의정부 시청 공보과 031-828-2371~5.
2010년 10월 30일
『회룡 문화제의 뮤지컬 의순공주』를
청평 강가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