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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예비역 장교 훈련단]

단양의 화통 2010. 10. 5. 14:55

 

 

R.O.T.C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예비역 장교 훈련단]

 

 

1961년 16개 대학에 학도군사훈련단 설치

 

 

학군사관[R.O.T.C]제도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독립 직후인 1891년 버몬트주에 있는 한 대학에 군사학이 정규 교과목으로 설치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에는 현역 장교가 아니라 예비역 장교를 양성하기위한 제도였다.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직역하면 ‘예비역 장교 훈련단’ 이란 뜻이 된다. 즉, 예비역 장교를 육성한 뒤 곧바로 소집 해제해 민간인으로 생활하도록 하다가 유사시에 동원해 군사 작전에 투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1961년 윌슨 대통령이 국가방위법에 서명함으로써 R.O.T.C 제도출범했고, 1948년엔 정규 현역장교 양성 제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4월 제58차 국무회의가 ‘학도군사훈련단[학훈단]’ 설치안을 의결함에 따라 그해 05월01일부로 R.O.T.C 제도시행됐다.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한양대. 건국대. 경북대. 부산대. 동아대. 전남대. 전북대. 조선대. 충남대. 등 전국 16개 종합 대학에 학훈단이 창설됐다.

 

대학별로 대학 성적과 체력. 면접. 신원조회 등 엄격한 심사 정을 거쳐 3,175명을 후보생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그해 06월01일 각 대학 학훈단 창단과 함께 대한민국의 첫 R.O.T.C 후보생이 됐다.

 

 

   후보생들은 대학 3~4학년 2학기 동안 총 702시간의 교육 훈련을 받았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350시간, 여름방학 4주간에 걸친 입영훈련이 352시간이었다. 그해 10월 0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서울지역 R.O.T.C 1기 후보생 1,500명이 행진에 참여해 R.O.T.C의 존재를 알렸다.

 

 

    1963년 02월 서울 육군본부 광장에서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R.O.T.C 01기 임관식이 열렸다. 이때 임관한 R.O.T.C  01기생은 2,642명이었다. 01기 중에는 장군까지 진급한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다.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은 R.O.T.C로서는 처음으로 대장까지 진급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과 박재윤 전 아주대총장, 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박규직 경기학원 이사장,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 등이 R.O.T.C 01기 출신들이다.

 

 

‘학도군사훈련단’이란 이름은 1971년 ‘학생군사훈련단’으로 바뀌었다.

 

 

 

 

조선일보 제27912호

2010년 09월 24일 금요일 51판 A29면

우측 하단의

장 일현 기자 ihjang@chosun.com

 

대한민국 1호 에서

 

의정부 집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 영섭


2010년 09월26일 옮겨 적음.




대한민국 ROTC 1기 임관 50주년 행사

대한민국의 명예, ROTC의

전설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1961년 6월 1일, 부족한 초급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ROTC’가 창설되었다. 2년 뒤인 1963년, 2,600여 명의 ROTC 1기가 임관한 이래 대한민국 ROTC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18만여 명의 육해공군 소위를 배출해왔다. 사회․문화․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출한 인물들을 배양하며 반세기의 역사를 써내려온 대한민국 ROTC의 길잡이가 되어온 영원한 ‘왕소위’ ROTC 1기 동기들이 모여 임관 50주년 행사를 준비한다.

    한 시대를 풍미해온 그들의 젊음과 추억, 땀과 사랑이 스며있는 곳, 대한민국의 명예이자 ROTC의 전설이 된 ‘ROTC 1기 임관 50주년’ 의 기억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 그들의 축제가 펼쳐질 오는 10월 10일, 품위 넘치는 노년의 ROTC 1기 선배들의 모습은 물론 참전용사의 용맹함과 사회초년생의 설렘, 산업 역군으로서의 자부심, 50년 전의 까까머리 후보생들의 풋풋함과 열정까지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1963년 2월 20일 육군본부 광장에서는 재경(在京) 지구 학군사관 후보생(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1기생 장교 임관식이 열렸다. 육군본부와 거리가 있는 지방 대학의 후보생들은 관할 관구 사령관 주관 아래 임관식 행사를 갖는 등 ROTC 1기생 2,642명은 같은 날 초급장교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듬해인 1964년 2월 23일에는 신임 장교 2,615명이 탄생했다.

 

   ROTC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대한민국에 ROTC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61년이다. 불안했던 국내 안보 상황과 부족한 군 초급 지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초급장교 양성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대학생들 중 우수한 자를 선발해 3~4학년 2년간 기초 군사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졸업 후 대학 전공과 유관한 병과를 부여해 장교로 임관시킴으로써 초급장교로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 ROTC 제도가 도입된 대학은 건국대, 경북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동아대, 부산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전남대, 전북대, 조선대, 중앙대, 충남대, 한양대 등 전국의 16개 대학이었다.

 

    ROTC 제도 도입 이후 매년 3,000~4,000명의 ROTC 후보생이 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쳐 소위로 임관해 실무 부대로 배치되어 왔으며, 육군 초급장교의 70%, 소대장급 지휘관의 80%, GOP 및 해안 경계 담당 사단 소대장의 약 85%를 ROTC 장교가 담당할 정도로 ROTC의 영향력은 성장해가고 있다. ROTC 장교들이 국토방위의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1963년 ROTC 1기 장교 2,642명이 계급장을 단 이후, 올해[2013. 9. 10. 14:05] 51기 임관자 4,748명이 임관하기까지 지난 51년간 ROTC 장교 18만여 명이 배출됐다.

    2013년 현재 전국 115개 대학에서 ROTC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2011년부터는 ROTC 문호가 여대생에게도 개방되어 올해 처음으로 ROTC 출신 여군 소위 58명이 임관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만 하다.

    ROTC 출신들은 복무 중에는 국가방위의 핵심 전력으로, 전역 후에는 우리 사회 경제 발전의 주춧돌이 되어왔다. 다시 말해 18만 ROTCian이 전역 후 기업 및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2013년은 대한민국 ROTC 창설 52주년이자

ROTC 1기 임관 50주년이다.'

   

 

평생을 가슴 속에 담아온 ‘ROTC’라는 이름으로!

 

    지난 2011년이 ROTC 창설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ROTC 관련행사가 펼쳐져 그간 잊고 지내왔던 동기들은 물론 후배들의 자랑스러운 얼굴을 만나볼 수 있었던 한해였다면, 올해는 ‘ROTC의 역사이자 전설’인 ROTC 1기생들이 임관 5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의미 깊은 해이다.

    다가오는 10월 10일[목요일, 오전 10시 30분], 서울프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펼쳐질 ‘ROTC 1기 임관 50주년 행사’가 갖는 의미는 ROTC 1기 동기들 뿐만이 아닌 ROTC 전 기수가 함께 참여하고 축하하는 전 세대의 화합의 장이라는 데 있다. ROTC 1기생들이 임관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일이다.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월이 변하고 나라가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회 요소요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주인공인 만큼 ROTC의 발전은 물론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함께해온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ROTC의 전설’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이니 말이다.

 



   의미 있는 행사이니만큼 ROTC 1기 총동기회 사무실에서는 ‘임관 5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권동열 준비위원장과 최평웅 사무총장, 강호재 동기회 수석부회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ROTC 1기생으로서 임관 50주년을 맞이한 것은 1기 동기생들뿐만 아니라 51기에 이르기까지 17만4천여 명의 ROTCian에게도 깊은 의미와 상징성을 주는 만큼 1기 동기생들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큰 만남의 자리이기에 보다 많은 동기들이 모일 수 있도록, 후배들에게는 각 기수 대표들을 초청하여 1기의 50주년 기념식을 기점으로 하여 후배들에게도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는 세 사람은 “한편으로는 벌써 임관 50주년 행사를 준비한다는 것이 새롭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어 행사의 준비위원장을 맡은 권동열 위원장은 “1기는 6․25(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그 시대에 부정과 불의에 항거한 4․19학생 혁명을 성공적으로 주도했고, 5․16 군사혁명을 겪으면서 당시 불안정한 정국과 북한의 심각한 군사도발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으로 도입된 ROTC제도를 통해 호국간성의 역할을 자임해왔다.

    창설초기에는 준비부족으로 인한 허름한 단복 착용과 교내에서의 제식훈련, 하계병영 입소훈련, 현역군인들의 교내주둔 등 생소한 병영문화의 대학유입에 일반학생들에게 호기심과 불안함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단정하고 정돈된 ROTC 문화로 건전한 면학분위기를 조성해왔으며, 2년간의 전공학문과 일반학, 군사학을 병행 이수 한 후에는 역사적인 ‘대한민국 육군소위’로서의 명을 받아 국가에 헌신해왔다.

 


 


    각 부대에 배치되어 2년간의 복무기간 동안에도 군 기풍쇄신은 물론 문맹 퇴치, 영농교육 쇄신, 전문기술 이전 등 군 전반에 걸쳐 ROTC 문화를 정착하는 등 군의 초급 장교의 질을 향상시키고 전투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해온 주인공들이다”고 설명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온 1기 동기생들이 자랑스럽다. 군대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유달리 돈독한데, 선배가 없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었다. 비록 우리는 이정표 없이 고단한 싸움을 하며 길을 마련해왔지만 우리의 노력이 후배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며 지내왔다. 모든 동기들이 같은 마음으로 군의 문화를 쇄신하고 새로운 역사를 쌓아왔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동기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내비치기도 한다.

 

   

‘ROTC 1기’,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주역들

 

    군복무를 마치고 당시 군에 잔류한 일부 동기생들은 월남 전투에 지원, 전투 중 부하의 목숨을 구하려다 장렬히 전사한 동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이 혁혁한 전공과 무공을 세우는 등 솔선수범과 성실한 근무태도를 인정받아 육군대장 1명[박세환, 고려대]을 포함해 김봉찬[연세대, 예 육군소장], 윤영호[연세대, 예 육군소장], 최무정[전남대, 예 육군준장], 주영은[전남대, 예 육군준장], 윤영기[경북대, 예 육군준장], 이병옥[충남대, 예 육군준장], 반웅식[경희대, 예 육군준장], 이규홍[성균관대, 예 육군준장], 이의근[경희대, 예 육군준장] 동기 등 10명의 장군이 배출되기도 했으며, 2년간의 군복무를 마무리 하고 사회에 진출한 동기들 중에는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인정받으며, 정치, 경제, 문화, 언론, 기업 등 분야별로 두각을 나타내 왔다.

 


 

    대표적으로 정치계에서는 박세환[고려대, 예 육군 대장, 현 재향군인회장,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2선 역임], 박병윤([서울대, 전 민주당 국회의원], 안충영[경북대,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조성래[경희대,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최두환[연세대, 전 민주당 국회의원, 작고], 김수영[고려대,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 김세옥[조선대, 전 청와대 경호실장], 안영화[경북대, 전 신한국당 국회의원], 박재윤[서울대, 전 재정경제부 장관], 강경식[고려대, 전 신한국당 국회의원], 김백준[고려대, 전 청와대 총무수석], 한영성[서울대, 전 산자부 차관] 동기가, 언론 및 방송계에는 배병휴[고려대, 현 경제풍월 대표이사 겸 발행인, 전 매일경제 편집국장], 김대중[서울대, 조선일보 고문], 최청림[서울대, 전 조선일보 주필], 이동화[전 서울대, 서울신문사 사장], 맹관영[성균관대, 전 KBS 아나운서], 신광식[연세대, 전 KBS 보도국 취재주간], 조동오[연세대, 전 동아방송 아나운서], 원충희[고려대, 전 한국경제 국장, 서울신문 STV 회장], 이태형[서울대, 전 동아TV 회장], 신호철[서울대, AP통신 특파원, YTN 이사], 맹만재[중앙대, TV 연출가], 박병윤[서울대, 전 한국일보 사장, 전 민주당 국회의원], 최평웅[고려대, KBS 방송위원], 이정훈[연세대, KBS TV 연출가 동기가, 경제계에서는 손길승[서울대, SK그룹 명예회장], 허진규[서울대, 일진그룹 회장], 성하현[서울대, 한화그룹 부회장], 박영주[서울대, 이건산업 회장], 송대평[서울대, 전 코오롱그룹 부회장], 윤영호[연세대,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남해화학 사장], 이현도[전북대, 전일석유 대표], 이승만[성균관대, 재미사업가], 이충구[성균관대, 유닉스전자 대표, 성균관대 총동창회장], 박규직[고려대, 서울경제포럼 대표, 아주메딕스 대표, 경기학원 이사장], 정장호[고려대, LG텔레콤 부회장], 원용선[동국대, 남양E&C 대표이사], 이기방[서울대, 기린전자 대표], 진철평[서울대, 전 한국수입업협회 회장], 이규철[조선대, 정호물산 대표], 김관영[성균관대, 전 성신양회 부회장], 김종길[성균관대, 전 삼보컴퓨터 부회장], 김태구[서울대, 전 대우자동차 사장], 박명식[서울대, 한국컴퓨터 사장], 정순착[서울대, 전 SK건설 사장] 동기가, 교육계에는 박재윤[서울대, 전 부산대 총장 및 아주대 총장], 정석종[전남대, 전 전남대 총장], 이군호[연세대, 전 목원대 총장], 이우용[연세대, 전 서강대 부총장 및 사이버대학 총장], 송병락[서울대, 전 서울대 부총장], 백승기[연세대, 전 경원대 부총장], 유장희[서울대, 전 이화여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동기가, 문화계에는 심현삼[서울대,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서양화 부문 심사위원] 동기가, 법조계에는 김유후[서울대,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흥록[서울대, 전 국가인권위원회 고문], 조성래[경희대, 민권변호사] 동기가,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배상도[부산대, 전 부산광역시 북구청장], 정현옥[동아대, 전 부산광역시 동구청장], 김용수[경희대, 전 경상북도 울진군수], 이주삼[동국대, 전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김평성[전남대, 전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동기가, 종교계에서는 전운덕[동국대, 전 천태종 총무원장], 오충일[연세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역임], 하태초[조선대, 장로회 전국선교연합회 회장 역임] 동기가 대표적이며 미주지역 ROTC 초대 회장을 지낸 김은종[서울대, 재미사업가]동기 및 대한약사회 회장을 지낸 김희중[서울대], 서울수의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휴익[서울대] 동기 등이 있다.

   

   

<ROTC 1기 동기회 역대회장단 및 고문>

 

초대 회장 박세환(고려대), 70~72년

2대 회장 김건영(전북대), 72~74년

3대 회장 박세환(고려대), 74~76년

4대 회장 김봉찬(연세대), 76~78년

5대 회장 윤영기(경북대), 78~81년

6대 회장 윤영호(연세대), 81~83년 / 부회장제가 신설됨

부회장 장영소(경북대)

7대 회장 전영춘(조선대), 83~85년

부회장 원충희(고려대)/김영건(경북대)

8대 회장 윤영호(연세대), 85~87년

부회장 원충희(고려대)/신민호(전북대)

9대 회장 박규직(고려대), 88~92년/이의근(경희대)/ 예비역과 공동회장제로 함

부회장 이충구(성균관대)/허진규(서울대)

10대 회장 원충희(고려대), 92~94년/김봉찬(연세대)

부회장 장영소(경북대)

11대 회장 박세환(고려대), 94~96년

12~13대 회장 주영은(전남대), 96~2000년

14대 회장 한춘기(고려대), 2000~2002년

부회장 조정남(성균관대)

15대 회장 박재윤(서울대), 2002~2004년

16대 회장 한금추(한양대), 2004~2006년

17대 회장 김관영(성균관대), 2006~2008년

18~19대 회장 김태규(중앙대), 2008~2012년

20대 회장 박병윤(서울대), 2012~2014년

   

   

1기 동기회의 자랑 ‘ROTC 장학재단’

 

   ROTC 중앙회 장학재단은 태초 ROTC 1기를 중심으로 토대가 마련됐다. 1960년대 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ROTC 동기들이 기금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월남 참전 동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후배 양성’의 뜻을 두고 용돈을 절약하여 1인당 2달러씩 모아 적립하며 장학재단이 태동되었는데, 점차 정․재계, 언론인 멤버 등 예비역 동기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했고, 곧 후배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ROTC 장학재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최초의 장학금 전달식은 1971년 9월, 육군회관에서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 육군본부 일반 참모 부장과 6관구 사령관, 재경지구 학군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기복무 희망자 25명에게 1인당 3만원의 장학금(당시 한 학기 등록금)을 수여했던 것인데, 당시 장학금 수여 소식을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동년 10월에 금일봉(300만원)의 장학금을 하사해 격려해준 사례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1기에는 멋있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ROTC 1기 임관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권동열 준비위원장의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최평웅 사무총장은 “ROTC 행사나 골프대회를 하면 1기가 제일 많이 참석한다. 등산대회를 가도 1기 참석율이 제일 높다. 응집력, 그게 우리의 특징인 것 같다”고 덧붙인다.

    비록 현직에서 물러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동기들이 많지만 잘 모이고, 즐겁게 생활하며 자신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1년에 3~4회 발간하는 동기회보가 무색할 만큼 틈날 때마다 서로 모이고, 소식을 전하며 지낸다는 ROTC 1기 동기들의 열정은 늘 그때 그 시절 소대장 때와 변함이 없을 정도다.

   

   

   

최평웅 사무총장

ROTC의 전설, 우리의 건재함을 보여주자!

 

    ROTC 1기 임관 50주년 준비위원회 사무총장 최평웅

   지난 봄, 고려대학교 1기 등산회 시산제(始山祭)를 북한산에서 가졌어요. ‘ROTC 1기 등산회 시산제’라는 현수막을 걸고 한창 시산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마침 그 곁을 지나던 등산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ROTC 1기가 아직까지 살아있네?!”


    신기한 듯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지나치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인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뿐만 아니라 동기생들 모두가 큰 충격을 느꼈읍니다. 우리는 아직도 청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나?”라니…. ‘우리 1기가 벌써 저들에게서 잊혀져가는 세대가 되었단 말인가’ 하는 충격에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읍니다.

    우리 ROTC 1기가 아직도 이렇게 팔팔하고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임관 50주년 기념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말리라고 다짐해봅니다. ROTC의 전설, 대한민국의 역사를 창조해온 주인공 ‘ROTC 1기 동기들’과 함께 말입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

50주년 기념행사는 ROTCian의 헌신과 열정 되새기는 뜻 깊은 자리

   

    “23세 나이로 청운의 뜻을 품고 임관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렀읍니다. ROTC 1기가 임관한지 벌써 50주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읍니다. 지난 세월동안 국가로부터, 또한 동기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은 ‘ROTC 1기 50주년’을 맞이해 “선배가 없는 1기생들의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척박한 길을 개척해야 하는 힘든 임무를 맡았지만 성실함과 꾸준함, 리더의식을 바탕으로 그 길을 개척해왔다.

   선후배 관계가 유달리 돈독한 군대에서 선배가 없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이른 1기생들의 개척자적 길이 51기 후배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호국의 간성을 배출하는 향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ROTC 1기로서의 뿌듯함과 동기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드러낸다.

 

    “저는 ROTC의 길을 선택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랑과 혜택을 받아온 것 같읍니다. 제가 4星장군, 두 번의 국회의원, 두 번의 향군회장이란 보람 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또한 ROTC가 근간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합니다.

    ROTC는 곧 제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요. 생각해보니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훈련받고 임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동기생들의 역할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해 보건대 동기생들에게 많을 빚을 지며 살아온 것 같다는 박세환 회장은 4星장군을 지낼 수 있었던 것 또한 여러 동기들의 양보와 격려,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덧붙인다. 늘 감사함을 마음에 담고 산다는 박 회장은 그 빚을 갚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ROTC는 지난 50년간 국가안보의 선두에 서왔읍니다. 동시에 국가발전의 선봉에 서 있었읍니다. 국가안보와 국가발전의 인재양성소요, 인재풀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서울 현충원과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ROTC 동문들이 425명입니다. 이것이 우리 ROTC가 국가 안보의 현장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주는 것이죠.

    우리 1기에게는 임관 50주년, ROTC 창설 52주년을 맞은 2013년, 어느덧 ROTC 가족이 18만을 넘어섰읍니다. 오는 10월 예정된 우리의 50주년 기념행사가 수많은 ROTC의 헌신과 열정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박세환 회장의 ROTC에 대한 자부심과 1기 동기생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박세환 회장이 맡고 있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역전의 용사들이 모여서 친목을 바탕으로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국내 최대 안보단체이다. 재향군인회 850만 회원들이 단합된 가운데 ‘NLL사수, 북핵폐기, 전시작전통제권 재연기’ 등에 안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재향군인회는 ‘爲國獻身[위국헌신] 鄕軍本分[향군본분]’의 신념으로 튼튼한 안보와 대한민국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박세환 회장은


    1963년 ROTC 1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월남전에 자원해 한국대사관을 지켜냈다. 또한 ROTC장학금 모금운동을 제창해 매년 ROTC 후보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했다. 사단장 시절부터 군사령관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함께하는 군의 활동상을 몸소 실천하고 ROTC 출신 최초 4성 장군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15∼16대 국회 국방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익근무요원의 순직이나 공상을 국가유공자 예우차원에서 보상받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군인연금 수혜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법률 개정,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 이전 반대 결의도 적극 추진한 바 있다.

    2009년 9월부터 재향군인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11년 5·16민족상(안보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

나무 심고 사람 가꾸는 문화 예술 경영인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1972년, ‘사람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창의롭고 정직한 기업활동을 통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한국 목재산업의 발전을 이끈 장본인이다.

    이건산업은 꾸준한 기술개발과 품질경영으로 세계적인 종합 목재기업으로 성장해왔으며,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 드넓은 숲을 보유, 조림활동을 하는 등 다각적인 원목자원 확보에 힘쓰고 있다. 주요 브랜드로는 해외조림, 합판 제조와 판매, 목재 무역을 비롯하여 최고급 주거공간을 위한 마루 바닥재 ‘이건마루’와 Moving Wall 시스템 & 인테리어 도어 분야의 ‘이건라움’ 등이 있다.

 

    인간 중심의 경영과 문화 예술 경영, 기업의 사회 환원을 경영철학으로 삼는 박영주 회장은 1990년부터 매년 가을, 문화나눔활동의 일환으로 이건음악회를 무료로 개최하는 등 문화예술 후원활동도 장기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직을 역임하는 등 메세나 활동의 전파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온 박영주 회장은 현재 예술의 전당 이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8년에는 한국경영인협회 선정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특히 올해 1월에는 해외조림지인 솔로몬제도의 경제·문화교류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영사에서 명예 총영사로 승격돼 한국과 솔로몬,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건산업은 지난 1987년 제주도 2배 크기의 솔로몬 군도 초이셀섬 산림단독개발권과 1996년 뉴조지아 자체 조림지를 확보, 친환경 조림사업을 통해 솔로몬 군도의 고용 창출은 물론 의료·장학사업과 같은 지원사업을 벌여온 바 있다.

 

   

   

뉴프라이드코퍼레이션(New Pride Corporation) 회장

美 특수운송 꽉잡은 한상 김은종 동기

   

    재미사업가 김은종 동기는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의 오클랜드[Oakland]에서 창립한 [주]뉴프라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창립한 [주]뉴프라이드코퍼레이션은 지난 30여년간 꾸준한 흑자성장 속에서 미국에 IMS와 SM 등 2개의 자회사와 중국현지법인 DHY을 설립하고, 미전역 11개 주에 32개 지점망을 갖춘 미국유일의 ‘복합물류[Intermodal] 통합 서비스 프로바이더’로 성장한 ‘자랑스런 교포1세 기업’이다.

 

   뉴프라이드 코퍼레이션은 1978년 설립이후 LA인근 랜초 도밍게즈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 기업이다. 인터모달이라 불리는 복합물류 산업에서 사용되는 화물수송용 재생 및 신생 타이어 제조, 공급, 복합물류 운송 차량 및 장비의 정비 서비스, 관리업무의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인터모달 통합 서비스 프로바이더’로 설립 이래 지난 31년간 단 한 차례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왔다.

    여기서 말하는 인터모달 통합 서비스란 광활한 미대륙에서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복합 물류 서비스로, 항만 철도, 트럭을 연계해서 365일 24시간 중단 없이 물동량이 운송되는데 연계되는 모든 산업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뉴프라이드 코퍼레이션은 미국 유일의 ‘Intermodal Service Provider &Supperier’로 인터모달장비의 필수소모품인 타이어[일반자동차용 타이어가 아닌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체시에 장착되는 특수타이어]를 생산ㆍ판매하고, 고객사가 사용한 신생타이어 중에서 재생 가능한 것을 재생[Retreading]해서 다시 공급하며, 인터모달 차량 및 장비에 대한 모든 용역서비스를 제공하고, 통합자산관리 컨설팅을 하는 등 네 가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GE의 트레일러 14,000대를 UPS에 임대해주면, 여기서 파생되는 모든 용역과 장비 등의 서비스를 뉴프라이드가 일괄 제공하고, 이때 발생되는 모든 비용까지 one Billing System[Per Diem]으로 제공함으로써, GE와 UPS 양사의 자산을 관리함과 동시에 컨설팅까지 통합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이처럼 다양한 서비스 제공으로 미국최대 철도회사 BNSF 등 초대형 기업들을 고객사로 보유하는 등 160여 개에 달하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20년 이상의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관련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뉴프라이드코퍼레이션은 2010년 국내증권 시장에 상장한 바 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

“지구촌 굶주린 이웃에게 희망을”, 정정섭 회장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1989년 설립된 국제 NGO단체인 기아대책기구는 지구촌 기아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떡과 복음의 정신으로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며 그들의 생존과 자립을 돕고 있다. 기아대책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이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화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세계 80여개국 굶주린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국제단체로 성장, 아시아권 NGO의 주축이 되고 있다. 한국기아대책이 발전을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직원과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의 노력은 물론 그들의 마음과 뜻을 한데 응집하는 중심에 언제나 정정섭 회장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나눌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쁨”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정정섭 회장은 “아직도 세상에는 1분에 34명, 1년에 1,800여명이 굶주림 속에 죽어가고 있다. 하루에 단돈 100원이 없어 죽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비가 새지 않는 지붕만 있어도 우리는 지구촌 상위 25%에 속하는 부유층인 셈이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나’만이 아닌 ‘남’도 돌아보며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정정섭 회장이 기아대책과 삶을 함께 해온지 어느덧 20여년이 흘렀다. 오랜 시간동안 그가 흔들림 없이 국내외 기아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정정섭 회장의 굳건한 신앙과 나눔에 대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23년간 근무해오며 전문 경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정정섭 회장이 돌연 기아대책을 맡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당시 기아대책 발기인인 윤남중 목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1989년 당시 정정섭 회장이 일본 선교사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던 중 윤남중 목사로부터 “일본에 갈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내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는가”라는 제의를 받았고, 정정섭 회장은 그때부터 그동안 쌓아온 사회경험과 리더십,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지금껏 기아대책을 꾸려오고 있다.

 

    기아대책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는 국제 구호단체로 한국에서는 1989년 설립됐다. 한국 최초의 해외 원조단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현재 20만 후원자의 도움을 바탕으로 국내와 북한을 포함한 세계 70여국에서 740여명의 기아봉사단이 긴급구호활동과 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한 국내 148개 지역회와 220여개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직원수가 3,800명에 이를 정도로 대표적인 국제구호단체로 성장했다.

 

    기아대책의 사업은 해외사업과 국내사업, 북한사업, 긴급구호사업으로 나눠 진행된다. 해외사업의 일환인 어린이개발사업은 후원자가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맺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현재 34개국 94개 센터에서 24,000여명이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더불어 선진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기도 하며, 깨끗한 식수 공급, 병원운영, 의료팀 파견 등을 통해 건강증진에도 힘쓰고 있다.

 

     국내사업의 경우도 3,700여명의 저소득 결손가정 아동과 후원자를 일대일 결연시켜주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빈곤 아동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을 전국 각지에 설립하고, 각종 봉사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 회장단체로서 북한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북사업도 다방면에서 진행 중이며, 긴급구호사업을 통해 자연재해와 내전 등 갑작스런 재난 현장에 식량, 의약품, 생활용품, 옷, 의료인력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재불화가 김인중[신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오마주’

 

    프랑스 파리에서 30㎞쯤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70여일을 보낸 곳이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 고흐가 묵었던 여인숙, 성당·밀밭·계단 등 고흐 그림의 소재가 된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해마다 봄이면 음악 축제 ‘오베르 쉬르 우아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곳에서는 33주년인 올해 축제에 반 고흐 탄생 160주년을 맞아 색다른 행사가 마련되었다. 6월 1일부터 7월 5일까지 이어지는 축제와 함께 한국 출신의 재불(在佛) 화가 김인중 신부의 전시회가 열린 것이다.

    현대미술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위해 김 신부는 특별한 작품을 준비했다. 고흐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가로·세로 20㎝인 작은 캔버스 160개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작품에는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오마주[hommage·경의]’라는 부제만 붙였다.김인중 신부의 작품은 고흐의 대표작 ‘오베르 성당’의 소재가 된 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 성당 내부에도 전시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60주년 기념 전시를 마치고 오는 9월 벨기에의 세 번째 도시인 리에주의 대성당에 6m 높이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인중 신부, 이 작품 또한 제작 전 과정을 벨기에 TV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만큼 관심이 크다.또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프랑스 2’ TV에서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 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다.

 

    신부이자 재불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인중 신부는 부여 출신으로, 1966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술교사로 일하다가 스위스로 훌쩍 떠났다. 1969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스위스 유학 도중 사제가 되었다.

    그는 초기 유화에서 스테인드 글라스, 미사 제의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움 속에서 빛나고 황홀한 세계를 형상화했다. 세잔의 서거 100주년을 맞는 2006년에는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의 성당 파이프 오르간 여닫이문을 그림으로 장식하였으며, 현대 회화의 시조인 세잔의 자취가 흠뻑 묻어 있는 곳의 기념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될 정도로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다.

   

   

구인사 주지/13대 천태종 총무원장 전운덕 스님

기본과 감사를 아는 국민이 되어야

   

    “나라 없는 국민은 없습니다. 내 나라 없이는 종교도, 기업도, 사회단체도 있을 수 없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13대 천태종 총무원장을 지낸 구인사 전운덕(국가원로회의 부회장) 주지 스님의 말씀이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전운덕 스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골자다. 국가관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져야 스스로 발전할 수 있고, 나라 또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삿된 논리, 삿된 종교를 통해서 윤리를 잃어가는 일부 국민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을 잇는 전운덕 스님은 “국민들이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고, 윤리, 도덕을 바로 알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헌신해온 역대의 애국지사와 영웅호걸들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아는 참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한민국 단일민족, 한 가족임을 잊지 말고 북한과의 원만한 관계 회복과 통일은 물론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참된 윤리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기본과 감사를 알고,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참국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전운덕 스님은 ROTC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ROTC는 대한민국의 장교이자 근간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골조라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근간으로 ROTC 장교가 되었다면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고, 국민의 안녕과 편안함을 도모하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군복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ROTC 장교’라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주문해봅니다. 그래서 앞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늘 당당한 대한민국의 ROTC, 끝까지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2018년 08월 05일


무진장 더운 더위가 엄청나게 진행되는 날!


대한민국 ROTC 1기 임관 50주년 행사[2013. 9. 10. 14:05]자료를

Copy하여


충북 단양의 투구봉 주유소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