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의 이야기

창덕궁 희정당 빗장 풀다. 창덕궁 금천

단양의 화통 2018. 7. 9. 12:01


빗장 푼 창덕궁 희정당 내부는

100년전 첨단공간

입력 2018.11.11. 11:58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보면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지 느껴집니다. 일부 부품은 수입했어도 제작은 모두 국내에서 했읍니다.

용이나 기쁠 희(喜) 문양이 그 증거입니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던 창덕궁 희정당[熙政堂]내부가 처음으로 개방된 8일, 전각에서 가장 넓은 접견실에서 만난 신지혜 아름지기 팀장은 "희정당과 대조전 권역에 현대 조명시설 231기가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희정당에 서양 생활양식과 물품을 적용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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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11월 공개 이후 내년[2019년] 3월 정식개방
순종이 앉았던 의자에 새겨진 매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희정당 내부에서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이 앉았던 의자에 날개를 펼친 매가 새겨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보면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지 느껴집니다. 일부 부품은 수입했어도 제작은 모두 국내에서 했습니다. 용이나 기쁠 희(喜) 문양이 그 증거입니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던 창덕궁 희정당[熙政堂]내부가 처음으로 개방된 8일, 전각에서 가장 넓은 접견실에서 만난 신지혜 아름지기 팀장은 "희정당과 대조전 권역에 현대 조명시설 231기가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보물 제815호인 희정당선정전[宣政殿]대조전[大造殿]사이에 있는 건물로, 대조전과 함께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내전 영역에 속한다.


    본래 명칭은 숭문당이었으나 연산군 2년[1496] '밝은 정사를 펼친다'는 의미를 지닌 희정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용도도 왕이 잠을 자는 침전[寢殿]에서 평상시 머무는 편전[便殿]으로 변경됐다.

    희정당과 대조전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됐고, 경복궁 강녕전과 교태전을 각각 옮겨 1920년 재건했다. 이 과정에서 희정당에 서양 생활양식과 물품을 적용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됐다.


    단적인 예가 순종이 자동차를 타고 내리기 쉽도록 마련한 현관. 건물 창호는 한지가 아니라 유리창으로 마감했고, 내부에는 다양한 전등을 달았다.

창덕궁 희정당의 근대식 유리창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희정당에서 시민들이 내부 시범관람을 하고 있다. 2018.11.8

    문화재청은 금단의 영역이던 희정당 내부를 문화재 지킴이 업체인 효성, 아름지기 도움으로 일부 정비한 뒤 11월 한 달간 시범 개방하기로 했다.


    신 팀장은 "희정당은 계획 단계부터 근대적 성격을 띠도록 설계했다"며 "전기, 수도, 난방, 화장실 모두 서양식"이라고 강조했다.


    현관에 올라 희정당으로 이어지는 ㅁ자 회랑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으로 옮기면 비서들이 근무하는 찬시실[贊侍室]이 있고, 모서리 지점에 화장실이 보인다.

창덕궁 희정당 내부의 화장실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희정당에서 시민들의 내부 시범관람이 실시됐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희정당 내부 화장실 모습. 2018.11.8

     화장실에는 수세식 변기가 있고, 세면대 옆에는 1908년 런던에서 제작한 보일러를 설치했다. 화장실 옆 작은 공간은 칸이 나뉘었는데, 칸마다 푸른색 문양이 들어간 화려한 변기가 하나씩 있다.


    화장실에서 접견실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대기실을 뒀는데, 창에는 커튼을 달았고 바닥은 나무를 짜 맞췄다.

    접견실 옆은 순종 침실과 사무 공간이 있으나 아직 정비가 완료되지 않았다. 침실 앞 복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뚫은 구멍이 있는데, 라디에이터를 놓았던 자리라고 신 팀장은 설명했다.


     희정당 관람 백미인 접견실에는 벽면 높은 곳에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이 그린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모사도가 걸렸다.


     국립 고궁박물관이 작년 12월 전시에서 공개한 두 그림은 가로 약 8.8m, 세로 약 2m인 대형 벽화로 비단에 그린 뒤 종이에 배접했다.

2015년까지 희정당에 있다가 보존처리를 위해 떼어냈다.


    창덕궁 관계자는 "김규진 그림은 마지막 궁중 장식화로, 순종이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조선인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달 30일까지 창덕궁 희정당 내부 시범관람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희정당에서 시민들이 내부 시범관람을 하고 있다. 2018.11.8 hihong@yna.co.kr

     붉은색 카펫이 깔린 접견실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식 가구가 지금도 있다.

   노란색 의자에는 대한제국 상징인 오얏꽃 문양을 새겼고, 매로 보이는 동물 조각도 확인된다.


    신 팀장은 "전등은 모두 수작업으로 세척했다"며 "전구는 대부분 1970∼1980년대 교체됐고, 대조전 샹들리에에서 1920년대 전구를 하나 찾았으나 필라멘트가 끊어져 불이 켜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희정당 시범 개방은 11월30일 까지 목∼토요일에 하루 두 차례 진행하며, 관람권은 매진됐다.

    문화재청은 내년[2019년]3월부터 희정당 내부를 정식 개방할 방침이다.

창덕궁 관계자는 "시범 개방에서 관람객이 제시하는 의견을 참조해 차근차근 고증과 복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덕궁 희정당 전등과 문양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희정당 내부에 설치된 전등과 천장 문양. 2018.11.8 hi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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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


출처 ; 물, 자연 그리고 사람 (사보, 2012년), 문화재청(http://search.cha.go.kr)


물이 흘러야 비로소 궁궐이 살아 숨 쉰다.







     창덕궁 금천은 궁궐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시냇물이자 살아 흐르는 비단 물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물 흐름이 단절되어 메말랐던 금천에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물은 창덕궁의 맥을 되살리고 역사를 재건한다. 보름달 달빛에 영롱이는 맑은 시냇물, 창덕궁 금천의 정취가 남다르다.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한 창덕궁.


     은은한 달빛 아래 흐르는 맑은 시내, 금천이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낸다. 금천은 전통 건축 양식에서 궁 바깥과 안을 구분하고자 조성한 시내다.

    조선 궁궐에는 모두 금천이라 부르는 개울이 흘렀고, 그 위에 돌다리[금천교)]를 놓아 건너가곤 했다.

    금천은 배산임수와 궁궐의 안팎을 구별하는 자리에 명당수가 있어야 길하다고 여기던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조성한 것이다.

    대부분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자연 하천을 궁궐과 연결해 만든 형식이 많았다.


    금천은 세속적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을 구분하는 의미에서 '금할 금[禁]'을 붙였다. 그러나 창덕궁에서는 '비단 금(錦)' 을 써 '비단 물길' 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흐르는 물이 비단같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궁궐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럽고 좋은 기는 금천에 흐르는 물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여겨 '비단 금'을 쓰기도 했다.

    창덕궁 금천은 궐내 작은 산에서 내려온 물이 모여 궐내 각사 끝자락에서 금천교를 지나 돈화문 옆으로 빠져나가 청계천으로 흘러갔다.


    궁궐마다 있는 금천에는 이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다. '금천교[禁川橋]' 라는 이름 그대로 신하들은 이 금천교를 건넘으로써 사사로운 마음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전해진다 .또 깨끗한 마음으로 정치를 하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그러나 창덕궁의 금천교는 다른 궁궐과 달리 '금천교[錦川橋]' 라 칭했다. 이는 창덕궁이 다른 금천교와 달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창덕궁 금천교는 궁궐 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돌다리로 꼽힌다. 금천교는 길이 12.9m, 폭 12.5m로, 창덕궁을 창건하고 6년 후 1,411년[태종11년]에 축조했는데, 그 후 숱한 전란에도 창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정문인 돈화문과 궁궐 내전으로 진입하는 진선문 사이에 있다. 이 다리는 평교가 아니라 가운데가 활처럼 약간 휘면서 높인 구릉형으로 길이 12.9m, 폭 12.5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폭이 넓은데, 이는 임금 행차 때 의장 행렬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 길이 세 갈래로 나 있는데, 가운데 길은 어도[御道]라 하여 왕만이 다닐 수 있었다.


    특히, 금천교 하천 바닥에 설치한 2개의 홍예는 아름다운 구조를 자랑한다.  무지개 비슷한 형상을 해 '무지개 다리' 로 불린다 홍예 기반석 위에는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상 등 동물상들을 배치해 아름다운 금천과 조화를 이룬다.


    이런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창덕궁 금천교는 올해 보물[1,76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금천에 반사되고, 부용지에 뜬 보름달을 봐야 창덕궁의 진수를 제대로 구경하는 것이다."


    물이 흐르기 전의 창덕궁 금천은 어딘가 삭막한 느낌이었지만, 물이 흐르는 지금은 운치가 더해졌다. 특히 달빛을 받은 금천은 교교하게 흘러 정취를 더한다. 금천에서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관은 4월부터 10월까지 시행하는 '창덕궁 달빛 기행' 행사에서도 즐길 수 있다. 보름 달빛이 흐르는 금천이야말로 왕만이 누리던 호사를 재연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조선 궁궐 중 하나인 창경궁의 에도 2,009년 어구 통수식이 있었다. 창경궁의 어구 통수식은 상류에 춘당지라는 연못 물이 흐르도록 유도한 것이고, 이번 창덕궁의 금천은 하천에 흐르는 땅 위 물과 천수[빗물]을 어구에 가두어 사용함과 동시에 지하수, 하천수를 개발해 금천으로 흘려보내는 차이점이 있다. 이번에 시행한 금천 통수는 보물로 지정된 금천교와 금천을 아끼고 잘 보존하려는 노력과 함께 복원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2018년 07월 09일


My Water Site의

"역사속의 물" 을 복사하여


비 엄청 내리고 있는 날


충북 단양의 투구봉 주유소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