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인 옥소 선생께서 사랑한 구담봉!
'나 죽으면 구담봉에 묻어달라!'.....구담봉 산행에 묘미를 더해
대 시인 "옥소 권 섭"의 무덤이 구담봉 산행에 묘미를 더하고 있다.
구담봉은 옥순봉과 함께 남한강 제1 경을 이루고 있어 옛부터 시인 묵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온 단양의 대표적 경승이다.
"옥소 권 섭"은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 등과 함께 우리 시가문학의 대가로 손 꼽힌다.
벼슬을 사양하고 전국을 유람하며 시작에 탐닉했던 "옥소 권 섭"은 8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무덤 자리를 옥소집에 직접 그려 남겼고, 후손들은 옥소선생의 유언을 쫓아 옥소산 구담봉에 앞서 별세한 이씨부인과 조씨부인 사이에 합장하였다.
그리고 앞쪽으로는 22세의 나이에 요절한..... 문재가 남달라 옥소 생전에 조부로서 유독한 사랑을 받은 손자 시응의 묘가 함께하고 있다.
옥소는 한시 3,000수, 시조 75수, 가사 2편 등의 방대한 시문을 남기고 있다.
그는 대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송강이나 노계, 고산등에 비해 유명세가 덜한데 그 이유는 그의 시문이 문중 궤짝 속에서 300년 가까이 잠자면서 세상에 늦게 알려 졌기 때문이다.
옥소가 단양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자이자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인 수암 권상하의 연줄 때문이다.
수암은 옥소의 큰아버지로 상선암에 수일암을 짓고 학문에 매진한 바 있다.
본래 서울에서 나고 자란 옥소는 제천으로 낙향하여 황강, 청풍, 단양, 문경을 자주 오가며 시를 지었다.
이런 인연으로 구 단양[현;단성면]의 소금정 공원에는 옥소의 흉상과 단구도중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으며 제천지역에서는 그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옥소의 산소는 옥소산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등산로에 접해 있으나 안내판의 부재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 시인의 산소를 배알치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옥소산이라는 지명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구담봉과 옥순봉으로만 세상에 불리고 있다.
산 이름 옥소와 호를 같이하는 옥소 권섭은 살아서는 아름다운 단양과 제천의 경치를 유람하며 가장 멋진 시를 썼고 89세로 세상을 하직한 뒤에는 단양의 가장 멋진 절경에 산소를 잡게 됨으로써 이승과 저승을 통틀어 가장 낭만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다.
그의 묘소는 야산의 일반 묘소처럼 쓸쓸하지만 그의 생전 일화와 시문이 남아 구담봉과 옥순봉 산행에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자료제공 ; 기획 감사실 김상철]
행복한 단양소식 제152호
2011년 09월01일 목요일 신문 제 1면 좌상 면을
2011년 10월01일
대한민국의 Yacht항인 경기 화성의 전곡항!...........
그 전곡항 앞에 M-Boat에서
단양의 화통 / 6K2FYL. 신영섭 옮겨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