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의 이야기

하동환 자동차[HDH 자동차]

단양의 화통 2015. 3. 24. 09:41





 

하동환 자동차
 

 

      쌍용자동차의 모체인 하동환자동차(주)를  세운  하동환은 신촌 자기 집  앞마당에다가 조그만 버스 제작공장을 1955년 말에  세웠다.

      그리고는 차량수리를 하는 한편 쏟아져 나오는 군용 폐차를 불하받아 재생시켜 부속품들과 망치로 편 드럼통을 가지고 버스를 만들기 시작,  다행히 드럼통 버스도 잘 팔렸다.    

      ‘고객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버스, 종업원과 자본을 투자한 주주를 위한 기업’ 이라는 하사장의 기업철학으로 종업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만들어 낸 하동환버스는 운수업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계속 증가하는 작업량을 소화하기 위해 좁은 공장을 확장키로 결정하고 친분이 두터웠던 동종 업체인 구로동의 보성자동차공업사와 신촌에 있던 고려자동차공업사의 동의로 세 공장이 합병한  하동환자동차공업주식회사를 1962년 10월에 설립하고 구로동 고척교 안양천 변에 대지 7천평을 구입 새 공장을 지어 현대식 설비를 갖춘 다음 한달 평균 100대의 버스를 생산해 60년대 당시 국내 최대의 버스 메이커가 됐다.



     1966년 가을 한국 최초로 작은 석유부자 나라인 보루네오 섬의 브루나이로 리어엔진버스 1대를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엔진 등 구동장치가 달린 섀시를 일본에서 들여와 차체와 의자 등 모든 내,외장품을 순전히 우리 손으로 설계하여 만든 버스였다.

     이어 1967년 두 번째로 월남전쟁에 우리국군이 한창 파월되던 때 하동환자동차는 수출용 버스 20대의 제작을 위해 만반의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1967년 8월 초순 드디어 20대의 수출버스가 완성되어 서울시청 마당에 전시했을 때,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씨가 직접 시승해 보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대의 하동환버스가 사이공항[지금의 Hochiminh Port]에 내렸을 때 당시 월남 수상이었던 쿠엔 카오 키씨가 직접 환영식장에 나와 축하를 하여 이 식에 참석했던 하동환 사장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60년대 말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에 걸려 약 2년간 신진자동차의 조립 하청업체로 전락했다가 71년부터 휠 디스크 국산화와 특장차 제조업체로 변신하여 재기했다.

     그 후  하동환씨하동환자동차공업주식회사를 자동차종합메이커인 동아자동차로 크게 키워 놓은 79년 다시 버스 만들기를 시작해 일반 버스는 물론 고속버스 전문 메이커로 돌아갔으며. 1986년 쌍용그룹으로 회사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