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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구야 들자구야(다자구 할머니)설화

단양의 화통 2009. 9. 28. 19:02

 

다자구야 들자구야

(다자구 할머니)설화

 

 

      다자구 할머니(죽령 할머니 산신당)를 만나려면 전에는 5번 국도의 매바위 앞산의 모퉁이를 약간 돌아가면 되었으나 지금은 중앙 고속도로가 산을 통째 치워서 옛 정취는 없으나 눈에 익은 낙엽송이 큰 키를 세우고 반겨주어 이 터가 다자구 할머니 산신당 터로는 제격이라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죽령 산신당(다자구 할머니)은 봄, 가을에 한번[1년에 2번을]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러한 祭意(제의)는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기록으로는 조선시대 국사당이라 하여 인근의 단양, 풍기, 영춘 고을의 군수가 합동으로 관행제를 올린 것으로 남아있다.

 

     구한말 나라가 망하고 일제 강압기에는 제를 금하여 국가로부터 축문과 향을 받지 못해 마을에서는 마을 동제로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여왔다.

 

    현재는 음력 3월과 9월에 유교식으로 제가 치러진다.

 

    본 다자구 할머니의 설화는 옛날 경상도 풍기 땅에서 단양으로 넘어오는 죽령은 험하기도 했거니와 도둑 떼가 들끓어 행인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밤에만 나타나던 도둑들이 대낮에도 나타나 행패가 심해지자 관가에서는 군졸을 풀어 도둑을 잡으려 했으나 도둑들은 험한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피해 다녔으므로 도둑을 잡기가 몹시나 힘들었다.

 

    이때 도둑들에게 전 재산을 빼앗긴 한 할머니가 관가에 찾아와서 도둑을 잡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관원들은 의아해 하였으나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관가에서는 할머니의 도둑잡는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도둑의 소굴에 들어가서 다자고야들자고야 를 외치고 있을 터인데 들자고는 아직 도둑이 덜 자고 있다 는 통보 이고 다 자고야는 도둑이 다 자고 있다 는 통보로 산채를 급습하여도 된다는 암호 였던 것이다.

 

 

   이런 약속을 한 다자고 할머니는 죽령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다자고야 들자고야를 목놓아 부르니, 도둑들이 이 할머니를 붙들어 왜 그리 울고 다니면서 다자고야와 들자고야를 찾느냐 물으니,  다자고와 들자고는 내 두 아들인데,, 낭구(나무)하러간 두 아들이 여러 날 째 돌아오지 않아 이렇게 찾고 다닌다 그러며 이 두 아들을 찾지 못하면 어디고 오 갈 데가 없다고 하자 도둑들이, 우리 산채에서 밥도 하고 빨래를 해 주면서 찾아보지 않겠느냐기에,  내심 이말을 기다린 다자고 할머니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산채로 따라 들어갔다.

 

 

    다자고 할머니는 도둑을 잡을 기회를 엿보았으나 그 기회는 쉬 오지 않았으나 여전히 다자고야와 들자고야중 들자고야만 계속 찾으며 헤매었으나 그 기회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그 날은 도둑의 두목 생일이었다.

    두목 생일에 도둑이 대낮부터 실컷 술을 마시며 놀다가 밤이 되었을 때는 너, 남 없이 몽땅 술에 골아 떨어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자고 할머니는 매복하여 있는 관군들을 향하여 다자고야를 외치며 도둑 산채의 문을 열어 관군의 진입을 도왔다.

 

    그런데 다자고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다자고 할머니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할머니는 본디 소백산의 산신령으로 믿게 되어 현재까지 구전되고 있다.

 

현재 불리어지는 노래는 다음과 같아 적어본다.

 

 

   다자고야 들자고야 언제가면 잡나이까, 들자고야 들자고야 지금 오면 안 됩니다.

 

다자고야 다자고야 소리칠 때, 기다리라 다자고야 다자고야, 그때 와서 잡아가소

 

 

  본 설화는 본 단양지역에 구전되는 이야기를 새로이 각색하여 단양군에서 2001년3월

 

1일 재판 1쇄 펴낸 단양의 향기 찾아 에서 옮겨 적은 글임을 밝혀둡니다.